지방살이와 한국형 워케이션의 접점
지방살이와 워케이션, 왜 지금 우리가 이 둘의 경계를 넘나드는 가
2025년 현재, 한국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수도권에 집중된 인프라와 인구는 여전히 주요 흐름이지만, 코로나19를 계기로 촉발된 재택근무와 유연근무제의 확산, 그리고 디지털 기반 직업군의 증가로 인해 ‘일하는 장소’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지고 있다. 이에 따라 ‘워케이션’이라는 개념이 대중화되었고, 동시에 ‘지방살이’에 대한 관심도 함께 부상했다. 이 둘은 겉보기에는 비슷하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생활 방식이다. 워케이션은 ‘일시적 체류’와 ‘일의 연속성’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고, 지방살이는 ‘장기적 전환’과 ‘삶의 재배치’를 포함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 두 흐름이 자연스럽게 겹쳐지며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내고 있다. 바로 “지방에서 장기 체류하며 일하는 삶”, 즉 워케이션이 일상화되고, 그것이 점차 지방살이로 확장되는 현상이다.
예컨대, 제주도 서귀포에서 워케이션을 시도한 30대 마케터가 한 달 체류 후 다시 돌아가지 않고 6개월 계약의 원룸을 얻어 정착하거나, 강릉에서 워케이션을 하던 영상 디자이너가 인근에 자취방을 얻고 지역 커뮤니티 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하는 사례들이 증가하고 있다. 이들은 처음엔 ‘단기 일과 휴식’을 목적으로 지방에 머물렀지만, 일하기 적합한 환경과 상대적으로 낮은 생활비, 자연 친화적인 삶의 질에 매력을 느껴 ‘중장기 체류’ 또는 ‘반이주’의 형태로 전환하게 된 것이다. 지방살이 와 워케이션의 접점은 바로 이 전환점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이 전환을 잘 준비하고 구조화할 수 있다면, 수도권 중심의 삶에 지친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의 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지방살이와 한국형 워케이션이 어떻게 만나는지, 어떤 조건이 있을 때 두 라이프스타일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지, 그리고 장기 체류형 워케이션을 성공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실질적인 방법들을 소개한다. 워케이션이 단지 일하는 장소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삶의 구조를 새롭게 디자인하는 기회가 될 수 있음을 함께 살펴보자.
장기 체류형 워케이션의 유형별 모델
워케이션이 지방살이로 확장되기 위해서는 그 체류 방식이 단순한 단기 여행이나 임시 휴식에서 벗어나, ‘일과 생활의 지속 가능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를 기반으로 현재 한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장기 체류형 워케이션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는 “1개월~3개월 단위의 임대 기반 워케이션”이다. 이 모델은 에어비앤비, 월세 원룸, 장기 게스트하우스를 활용해 비교적 안정적인 주거 공간을 확보하고, 동시에 코워킹 스페이스나 카페를 업무 공간으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제주도 서귀포, 전남 여수, 강릉 안목해변 일대, 전주 한옥마을 인근 등은 이 모델이 활발하게 운영되는 지역이다. 특히 프리랜서, 스타트업 종사자, 콘텐츠 크리에이터 등 디지털 기반 직업군이 많이 선호한다.
두 번째는 “지역 기반 워케이션 프로그램 참여형”이다.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거나 민간 플랫폼이 운영하는 워케이션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일정 기간 동안 지역 내 숙소와 업무공간을 제공받고, 지역 탐방이나 커뮤니티 활동에도 참여하는 모델이다. 예를 들어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나 ‘강릉시 디지털노마드 센터’에서 주관하는 장기 워케이션 프로그램은 숙소, 코워킹 스페이스, 교통 일부를 지원하며, 참여자는 자유롭게 일하면서 지역민과의 교류 활동도 진행하게 된다. 이러한 형태는 ‘지방살이’를 간접 체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수도권 거주자들이 지방 생활을 시뮬레이션해 보는 데 유용하다.
세 번째는 “반이주형 워케이션”이다. 이는 본격적인 지방살이는 아니지만, 수도권과 지방을 번갈아 오가며 한 달은 서울, 한 달은 남해 혹은 목포 등에서 생활하는 형태로, 최근 디지털 노마드나 자영업 종사자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다. 이 방식은 장기 체류 워케이션과 지방살이의 경계선에 있으며, 자율성과 유연성을 모두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모델을 선택한 이들은 자신만의 루틴을 확보하며, 점차 정착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낮춰간다.
이처럼 장기 체류형 워케이션은 단순한 숙소 선택을 넘어, 그 체류의 방식과 구조를 어떻게 짜느냐에 따라 지방살이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삶의 패턴을 일정 부분 지방 중심으로 이동시키는 실험”이며, 그 실험이 반복될수록 지방과 도시의 경계는 흐려지고, 새로운 주거와 노동의 조합이 탄생한다.
지방에서 일하기 위한 실질적 준비
지방에서 장기 체류형 워케이션을 시도하려면 몇 가지 실질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단순히 숙소만 확보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며, “일하는 일상”을 유지하기 위한 다층적인 환경 구성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는 주거 인프라, 업무 환경, 루틴 설계, 커뮤니티 연결의 네 가지 축이 핵심이다.
첫째, 주거 인프라다. 장기 체류를 위한 숙소는 단기 여행객용 숙소와 달리, 주방, 세탁기, 책상, 고속 와이파이, 냉장고, 전자레인지 등 자취형 생활 구조가 기본적으로 갖춰져야 한다. 또한 계약 기간, 보증금, 공과금 포함 여부 등도 꼼꼼히 체크해야 하며, 한 달 이상 머물 경우에는 에어비앤비가 아닌 일반 원룸 계약을 고려하는 것이 비용 면에서 유리하다.
둘째, 업무 환경이다. 지방에서는 수도권처럼 스타벅스, 위워크, 패스트파이브 등 대규모 코워킹 인프라가 많지 않기 때문에, 카페나 도서관, 마을회관, 창업보육센터 등 다양한 대체 공간을 탐색해야 한다. 예를 들어 강릉에는 ‘디웍스 강릉’, 순천에는 ‘청춘창고’, 제주에는 ‘더캠프’ 같은 지역형 코워킹 공간이 존재한다. 여기에 개인 노트북, 멀티탭, 소음 차단용 이어폰, 노트북 스탠드 등 기본 장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루틴 설계다. 워케이션은 자율성이 높기 때문에 스스로의 시간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지방에서 일할 경우, 업무 시간 외에 무엇을 할 것인지가 전체 삶의 질을 좌우하게 된다. 오전에는 업무에 집중하고, 오후에는 산책로를 걷거나 지역 농산물 시장을 방문하거나, 지역 문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식의 일정 구성이 바람직하다. 장기 체류를 위한 루틴은 단순히 ‘일 + 숙면’이 아니라 ‘일 + 쉼 + 지역적 경험’의 세 박자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
넷째, 커뮤니티 연결이다. 지방살이의 핵심은 결국 고립되지 않는 삶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역 내 디지털노마드 커뮤니티, 워케이션 모임, 지역 청년단체, 마을협동조합 등과의 연결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전주에서는 ‘로컬크리에이터 네트워크’가 지역의 외지 워케이션 참여자와 지역민을 연결하고 있고, 제주 서귀포에서는 워케이션 참여자를 위한 네이버 카페와 오프라인 정모가 정기적으로 열린다. 이 같은 연결은 단순한 정보 교류를 넘어, 심리적 안정과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요소다.
한국형 워케이션의 일상화, 지방살이의 전환
결론적으로 지방살이와 한국형 워케이션은 이제 경쟁하는 개념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특히 디지털 기반의 노동이 일상화된 2025년의 한국에서는 ‘장소 유연성’이 곧 삶의 질을 결정짓는 요소가 되었다. 수도권의 높은 주거비와 치열한 경쟁, 그리고 반복되는 출퇴근의 피로에서 벗어나, 자연과 연결된 삶을 찾고자 하는 이들에게 지방은 더 이상 ‘외곽’이 아닌 ‘대안’이 되고 있다.
워케이션은 이러한 전환을 위한 가장 안전하고 유연한 실험 모델이다. ‘지금은 잠시 지방에 머물며 일하는 중’이라는 구조가 결국 ‘지방에서의 삶도 가능하겠다’는 확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지방살이를 시도한 이들의 상당수는 워케이션을 계기로 지방 정착을 결심하게 되었고, 이는 도시-지방 간 새로운 형태의 이주 트렌드를 만들어내고 있다.
앞으로는 ‘지역 안에서의 이중생활’이라는 개념이 더욱 보편화될 것이다. 서울에 주소지를 두고 있지만, 실제 생활은 통영에서 하는 사람, 부산 본가에 주소를 유지하면서 강원도 정선에서 일하는 사람 등, 두 개의 생활 거점을 오가며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늘어날 것이다. 이들은 지역 소멸을 막는 중요한 연결 고리가 될 뿐 아니라, 새로운 소비·문화·네트워크를 지역에 유입하는 역할도 할 것이다.
워케이션과 지방살이는 결국 한 방향으로 흐른다. 바로 ‘나답게, 자유롭게, 지속 가능하게’ 살아가는 삶이다. 그 삶의 출발점은 더 이상 서울이 아닐 수도 있다. 지금 당신이 떠나는 그 작은 워케이션이,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